♧ 아름다운 동행 ♧
작금 반려동물의 수가 1000만을 훌쩍 넘어서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바야흐로 이름하여 반려동물의 전성시대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속해 있는 한 단체 카카오톡방에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한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반려묘 이야기로 하루 온종일 지지치 않는 입담을 과시하는 것을 흥미롭고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전혀 반려동물에 빠질 것같지 않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애완동물로 불리던 표현이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실시된 ‘인간과 애완동물과의 관계’를 주제로한 학술포럼을 계기로 1989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반려동물이란 용어로 승격(?)되어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려동물의 종류로는 대표적으로 반려견에서부터 고양이, 새, 햄스터, 토끼, 미니돼지, 파충류까지 다양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환경 속에 반려동물에 얽힌 시대의 자화상을 스케치하며 그 속에서 제 눈에 비친 삶의 의미를 한 번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반려동물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먼저 웃지 못할 넌센스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이 납니다.
개하고는 절대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 대답이 걸작입니다.
만일 달리기 경주에서 개한테 지기라고 한다면 ‘이런 개보다 못한 넘’ 이란 소리를 피할 수 없고
만일 어쩌다 개하고 비기기라도 하면 ‘이런 개 같은 넘’ 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운이 좋게 이겨서 좋아 날뛰기라도 하면 십중팔구 ‘미친 넘!!’ 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합니다. ^^
한편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는 이제 반려동물의 전성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깁니다. 유행가요로 비유하면 흘러간 고전 가요에 불과할 정도로 케케묵은 아재개그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반려동물이 소위 인간이 한동안 향유하던 반려자라는 절대보위를 찬탈하고 그 이상의 보좌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를 풍자하는 우스운 이야기로 이사를 갈 때 남편은 버리고 가도 반려동물은 자동차 상석에 앉혀 간다고 하여 일찌감치 왕의 보위를 빼앗겨버린 불쌍한 남편들은 필사적으로(?) 그 반려동물을 꼭 안고 타는 치졸함도 보인다고 합니다. 같이 묻혀 가려고…
슬프지만 인정하고 직시해야 할 현실입니다. 이 역시 웃지 못할 우픈 (우습고도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반려동물이 각광을 받는 현실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선적으로 홀로 살아가는 수많은 싱글족들이 반려동물에게서 아낌없이 얻는 더없는 평안함과 위안 때문일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도시의 영혼들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텅빈 공간으로 돌아오면 유일하게 반갑게 맞이하고 꼬리를 흔들고 몸을 불사하며 던지듯이 안기는 이 자그마한 위안의 동물에게서 전적으로 힘든 하루의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의 반려자로서의 부부의 기능과 역할이 소원해지고 점차 사라지는 시대에 대안으로서의 반려동물이 그 빈자리를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은 사랑을 베풀어 주는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따르며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반려동물에 관한 수많은 에피소드, 즉 반려동물 전용보험, 반려동물 미장원, 의류점 외에도 요양원, 펫택시 등등 다양한 인격화된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 사람의 염장을 지르는 가장 놀라운 것은 몇몇 반려동물이 받은 상속 유산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유명 토크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반려견에게 한화로 310억원 정도의 유산을 상속하기로 결정했으며 1992년 독일의 카르롤타 리버슈타인 백작부인은 죽으면서 당시 8000만 달러 (한화 810억원) 상당의 유산을 반려견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집니다.
소위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는데 이런 반려견의 팔자는 왕팔자라고 해야 하나요??
사회적으로 많은 논쟁의 화두가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려동물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는 다양한 즐거움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으로 경쟁으로 힘든 세상 속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종의 사랑의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아침에는 이러한 반려동물의 시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로 합니다.
우리의 몸에 함께 붙어 있어 운명처럼 평생을 같이 가야 할 내 몸의 지체들이 있습니다. 손과 발과 머리와 모든 살아있는 몸의 일부들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삶의 지체요 반려자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몸의 지체들을 아끼고 잘 관리하면 그 지체들은 우리에게 반려동물 이상의 보람과 기쁨과 감동을 줍니다.
가령 손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거나 연주를 하기도 하고 발재간으로 세계를 주름잡는 운동스타가 되기도하고 머리로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창의력이 새로운 미래의 세상을 잉태하기도 합니다.
이런 몸의 귀한 지체들이야말로 함께 잘 관리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반려자들이요 존재들입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를 떠나면서 바로 겪게 된 아픔이 제 몸 속에 반려자였던 디스크라는 놈의 고장이었습니다. 주인이 관리를 소홀히 하니 바로 이 디스크라는 몸 속의 반려지체가 저를 해코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6개월이란 시간을 잘 달래 주면서 그 관계가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몸의 어느 지체 하나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제 몸의 반려지체들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면 효즉시야(孝即始也)’ 라고 하여 ‘우리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선물이니 그것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효도의 시작이다’라고 강조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저의 자존감이 그 바닥을 친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외로움과 우울함이 엄습하면서 제 안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듯한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참된 위로와 격려였습니다. 그 때 무릎을 꿇고 제가 믿는 절대자인 주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제가 절대적인 위로를 얻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해 줄 대상을 찾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반려동물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남편이나 아내에게서 찾기도 합니다. 아니면 사랑하는 자식이나 형제부모에게서 찾게 되기도 하고 정말 아픈 마음까지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절대자이신 신을 찾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를 삶의 소울메이트(Soulmate) 라고 합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 그런 소울메이트를 소유하고 그 존재와 함께 같이 살아가는 삶,
바로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제가 남은 삶의 여정에서 새롭게 시작한 비즈니스의 새 이름이 이런 의미에서 찾은 바로 이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코칭 아름다운 동행 최준영 장로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 관련 팁 (0) | 2017.08.25 |
---|---|
스마트 시대, 스마트한 삶의 소통 (0) | 2017.08.21 |
교만한 생각 (0) | 2017.08.14 |
소년과의 약속 (0) | 2017.08.14 |
보이는 것이 능력입니다 (0) | 2017.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