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혜미야 1: 4-11 기도하는 성도들 (기도하는 건축가, 느혜미야)
어제 읽은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했던 사람으로 율법으로 백성들의 허물어진 영적인 부분을 다시 수축하는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었다.
그 후 약 12, 13년이 지난 주전 445년에 3차 귀환의 중심이 된 인물이 느헤미야였다. 3차 귀환의 동기가 오늘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벽 재건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느혜미야가 왕의 궁전에서 왕의 술 관원으로 있던 때의 일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술 관원이란 정부의 요직으로 의전비서관의 위치에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직무자였던 느혜미야.
페르시아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그가 그곳에서 그냥 살았다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넉넉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다녀온 형제들의 보고를 받고
느 1: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하나니를 통해서 보고 받은 느혜미야.
1,2차 성벽 재건을 하였으나 그래도 허술해서 언제든지 적의 공격을 받을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느혜미야
느 1: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지금의 느혜미야의 삶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느혜미야의 기도가 오늘 우리들의 기도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기도할 이유가 없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기도가 필요한 사람의 마음과 공감하는 것이다.
그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며 울며 기도하는 이것이 공감이다.
기도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이것은 기도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교류가 이루어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설교할 때에도 설교자와 청중들과의 마음에 공감이 없으면 설교는 그냥 울리는 꾕과리와 같을 것이다. 공감대가 형성이 되야 하는 것이다.
느혜미야의 공감하는 기도.
기도의 내용이 1: 5-11까지인데 한 사람의 기도가 이렇게 많은 분량은 성경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느 1: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여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 말씀에 두가지 특징이 있다.
1. 하늘의 하나님: 하늘을 향하고 있다. 땅만 바라보면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으나 하늘을 보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 현실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되는 것이다. 사면초가에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다.
2.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보실 때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하게 여기셨다 이것이 구원의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히 4:1 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긍휼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찬 363장 2절 가사
주가 죄를 살피면 누가 능히 서리요 오직 주만 모든 죄 용서하여 주시니 주님 앞에 떨면서 용서하심 빕니다
주님의 우리의 죄를 살피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열납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느혜미야의 기도는 죄를 자복하는 기도로 이어진다.
느 1: 6 이제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 집이 범죄하여
에스라의 기도에서도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기도했는데 오늘의 느혜미야의 기도에도 ‘나와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나님 앞에 통애하며 기도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질책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느혜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줄 믿는다.
기도의 기간이 얼마나 흘렀나?
<느 1: 1의 기슬르 월 ~ 느 2: 1 니산 월> 이 기간이 4개월이다.
이 기간동안 기도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왕 앞에 섰을 때 느혜미야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병이 있냐고 물을 때
느 2: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이것이 느혜미야의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냥 말해도 되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내가 말을 할 때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시요‘ 라고...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이 뒤에서 모두 도와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벽 재건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일을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느 4: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느 4: 9그 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도하며 상황을 극복해가는 느혜미야의 모습.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을 매수해서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 기도한다.
느 6: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다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느 13: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느 13: 22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요즈음 주일에 예수님의 제사장적 기도를 읽고 있는데,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기도가 ’아버지여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 영화로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이다.
이번 주일은 ’내 기쁨이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하옵소서‘인데 이런 주님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가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가? 라고 생긱한 적이 있으나....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저주의 역사뿐이었다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 대한 대속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일들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느혜미야가 ’나를 아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일을 완성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느 13: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나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들의 잘못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에스라시대 때에도 제사장들, 방백들, 지도자들이 이방 사람들의 문화 속에 섞여서 하나님 사람들의 정체성을 모두 잃고 살아가는 그것이 직분을 더럽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며 시작한지 52일만에 성벽 재건을 완공한다.
방해가 심해서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망치 들고 작업하며
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할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과 마음이 같아야 하기 때문에. 기도로 하나님과 마음을 조율해야 한다.
2. 방해하는 세력들 때문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삶 속에 나타나야 하기 때
문에
3. 기도가 없으면 일 잘하고 난 다음에 버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만해져서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만해져서 죄짓게 되면 일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의 겸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기 몸의 고통 속에서 일을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신다.
찬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게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아멘
최이우 목사님 설교 요약 - 최병철 장로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0: 1-9 기도의 필요성 (기도와 소원) (0) | 2019.04.02 |
---|---|
기도의 필요성 (기도와 믿음) (0) | 2019.04.01 |
에스라가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0) | 2019.03.28 |
여호와여 구하오니 (0) | 2019.03.27 |
기도하는 성도들 (기도하는 왕, 히스기야) (0) | 2019.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