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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디모데교회관리 2018. 9. 10. 09:49

♧ <내 탓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 

지난 주 9월 6일, 검찰이 350억원대 다스 자금 횡령과 100억원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음이 각종 언론 매체의 전파를 타며 일제히 보도되었습니다. 검찰은 이 날 열린 이 전 대통령 결심공판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부패 사건으로 엄정한 법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며 이와 같이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또 검찰은 징역 외에도 벌금 150억원과 추징금 111억 4131만여원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최후 진술을 통해 “부정부패, 정격유착을 가장 싫어하고 경계한 제게 너무나 치욕적”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대미문의 불명예스런 구속에 이어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중형이 구형되며 다음달 5일경에 선고될 1심 결과에 또 다시 중형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엄연한 정치 보복이라며 현실을 거부하며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은 1961년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작으로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며 대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측근에게 타살을 당하거나 자살을 하고 또는 감옥에 구속되는 등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명예 뒤에 이어지는 낙인찍힌 성적표의 결과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아니 초라하다기 보다는 비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정치보복이니 적폐청산이니 하는 영문도 모를 사자성어를 써가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하려는 모습에 우매한 민초들의 이를 대하는 시각과 감성은 그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기 보다는 차라리 실망과 슬픔의 감정을 지나 분노의 그것으로까지 바뀌고 있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잘못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한 법이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엄준한 법이 결정 앞에서 단 한 명도 ‘이 모든 게 나의 부덕한 소치입니다. 다 나의 탓입니다!’라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음이 안타깝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떨군 그들의 모습에서 뱉어지는 단 한마디의 말이 하나같이 “국민들께 죄송합니다!” 입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추호의 반성이 없는 영혼이 상실된 말이라 있는 그대로 수용이 되지 못해 우리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게 다 제 탓입니다!!>  
이 한마디를 회개하며 고백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모양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서 제가 살던 동네 근처에 위치한 성당에 잠시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성당의 미사 중에 다 함께 <고백의 기도>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미사를 인도하는 사제가 먼저 “전능하신 하느님과” 라고 시작하면서 운을 띄우면 성도들은 이어서 일제히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가슴을 세 번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성당의 미사의 모습이 아직까지 생각나는 것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 제가 제 가슴을 세 번씩 치면서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지?’라는 의문을 가졌다는 사실과 한편 가슴을 치며 반성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다는 아니겠지만 전혀 반성의 모습이 없이 영혼 없이 습관적으로 가슴을 치는 듯한 모습에서 진지했다기 보다는 다소 우스꽝스런 모습이었음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혼이 있던 없던 간에 일단 세 번을 가슴을 치며 세 번씩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완전수 3이라는 숫자가 주는 회개의 의미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잘못을 사하여 줄 때 3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중 가장 충성스러운 사도였던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다가 예수 부활 후에 그를 찾아 오신 예수님이 그 앞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번 묻고 베드로가 회개하며 그에 세 번 응답함으로 그의 죄가 사함을 받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참된 뉘우침과 회개는 용서를 받습니다. 그 회개와 뉘우침이 상대의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으로 돌려질 때 용서를 받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고 죄를 짓게 됩니다. 다만 그 잘못을 남의 탓이 아닌 나의 부족한 탓으로 돌릴 때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올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이 마치 끝장을 볼 것처럼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더니 남북대화라는 또 다른 거대한 태풍급 <북풍>이 불어와 다시 잠잠해 졌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인지 모르지만 한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던 이미지의 거물급 인사는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로 판결이 나서 다시 한번 죽어가던 <미투>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연극계의 카사노바라고 하는 인물은 <자신만의 특별한 연기지도>라는 이해할 수 없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돈과 권력이 전자(前者)만 못한 듯 징역 7년으로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도 <내 탓입니다>라고 회개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재수없다> <운이 없었다>는 등 나의 탓이 아닌 <남의 탓> 또는 <더러운 재수 빨>로 치부해버리는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해와 달과 별을 탓한다.” 
셰익스피어 연극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와 유사한 우리 속담으로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내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지적하는데 예민한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며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자신의 가난과 허약함, 못 배운 것을 하늘로 받은 세 가지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어록으로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했고, 허약해서 특별히 건강을 돌보며 90세까지 살았고, 어려서 못 배운 탓에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고 노력했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남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을 대하며 그저 남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속담에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어떠한 난관이나 시련은 나의 탓이고 나의 문제로 보고 그것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간의 첫 날의 아침!! 
잘 되면 <당신 덕분입니다> 혹여 안 되면 <그것은 나의 탓입니다>라는 한 마디를 건네시기를 권해봅니다.

코칭으로 아름다운 동행 대표 최준영 장로
http://evergreenhill.modoo.at